‘이렇게 잘하다니...’ 지난 2013년 5월 12일(일) 오후 5시 의정부예술의전당 대극장 무대에 선 <11마리 고양이> 배우들을 보고 난 첫 관객 반응이다.
2012년 12월 오디션부터 지금까지 장장 6개월의 연습기간을 함께 한 스탭들도 놀랄 만큼 시민배우들은 무대에서 완벽하게 변신했다. 시민들 자신도 예상치 못한 숨겨져 있던 ‘끼의 발현’은 시민합창뮤지컬의 목적과 일치했다. 문화소외 계층의 공연 관람 기회 증진을 위해 쓰여질 희망티켓 행복스폰서 공연으로 1,000원에서 10,000원까지 관객이 지불할 금액을 결정하는 티켓 정책이다. 1,025석 공연장의 약 82%인 840석이 판매되었으며 시민배우들의 가족, 지인 외에도 많은 일반 관객들이 함께 하여 본 공연에 대한 폭 넓은 관심을 확인하였다.
1막 : 개성 강한 고양이들이 떠나는 좌충우돌 여행기
무대 위로 조심스레 등장한 배우들은 뒤돌아서 숨을 고른다. 피아노 반주가 시작되면 노래를 시작하며 '야옹~'소리를 낸다. 객석은 그 소리에 화답하듯 곳곳에서 웃음이 나왔다. 뒤돌아선 배우들은 무대 앞으로 튀어나와 들고양이인 자신들의 앙칼진 정체를 보여준다. 나래이터 역할을 맡은 고양이가 나와서 각각의 역할을 소개하는데 그 면면이 재미있다.
무턱대고 열심인 야옹일, 불쌍하면서도 인자하게 생긴 야옹이, 재주 많은 유랑극단 출신 야옹삼, 보건소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야옹사, 온갖 음식 쓰레기를 다 먹는 음식 처리사 야옹오, 하늘을 나는 야옹육, 드라이기를 무서워하는 야옹칠, 애교많은 야옹팔, 의심 많은 야옹구, 억지로 애교 많고 이쁜 야옹십, 도둑고양이 야옹십일, 그리고 쓰레기 소각장의 야옹옹이 주인공이다. 제목과 달리 12마리의 고양이가 등장하며, 야옹일과 야옹옹을 제외한 배역은 전부 더블 캐스팅이다. 무대 앞에는 5개의 스탠드 마이크가 서 있고 각자 배역을 맡은 배우들이 나와서 대사를 말하고 노래하는 형식이다. 그렇다고 뒤의 배우들이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대사와 대사 사이, 대사와 노래 사이 공간을 메우고 무대 위를 채우는 역할을 한다.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은 배고픈 들고양이들이 자신들의 신세한탄을 하면서부터다. 이때 등장한 야옹일은 들고양이의 자유로움을 외치며 다른 고양이들을 선동하고 난지도의 고양옹을 소개하며 그와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고양이 백마리가 함께 먹어도 충분한 호수에 사는 큰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다. 신나게 춤추고 노래하며 여행을 떠나는 고양이들의 흥겨운 모습에 관객들까지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한창 여행 중인 고양이들은 슬슬 저마다의 사연을 들려준다. 대부분이 학대당하다 탈출한 고양이었다. 그 중 보건소에 대한 끔찍한 기억이 있는 야옹사가 기절을 하고 그에게 인공호흡을 하겠다며 달려드는 고양이들이 호들갑을 떨다 무대에서 퇴장하며 1막이 끝났다.
2부 : 고난 끝에 찾아온 짧은 행복, 고양이들의 결말은?
2부는 고양이들이 자신들의 전 주인을 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신세한탄을 하지만 여행은 계속되고 작은 호수에 도착한 고양이들은 큰 물고기가 없다는 소식에 망토를 모아 배를 만들어 큰 호수로 나가기로 한다. 풍랑을 만나고 큰 물고기에 위협당하기도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자장가"를 부르며 큰 물고기를 유인한다. 큰 물고기는 잠이 들고 고양이들은 물고기를 덮쳐 다 먹어치운다.
고양이들은 큰 호수가 맘에 든다며 이곳에서 살기로 함께하는 즐거운 미래를 상상한다. 그러나 분위기는 급전환되어 순식간에 분위기는 어두워진다. 고양이들이 먹은 물고기는 썩은 물을 먹어 오염된 물고기였고 고양이들도 오염되어 죽음을 맞게 된 것이다. 다들 기운이 빠지고 고통스럽게 비틀대지만 서로를 원망하거나 분노하지 않고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며 극은 끝났다.
즐겁게 보던 공연이 갑작스러운 불행으로 끝나자 관객들은 일순 당황하기도 했다. 객석의 어린 아이는 “배불러서 자나봐~”하며 해피엔딩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작곡가 노선락은 결말에 대한 우려를 예상한 듯 “어떻게 보면 황당하게 갑자기 비극으로 끝난다 생각하실거 같은데요. 사실은 그게 현실이고, 힘겨우면서 아름다운 일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들이 죽음으로 행복하게 별이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라고 결말의 의도를 밝혔다.
시민합창뮤지컬 <11마리 고양이>는 서로에게 공격적이고 앙칼진 첫 만남의 시간을 지나 각자의 힘겨웠던 삶을 공유하고 ‘큰 물고기’라는 하나의 목표아래 서로 의지하면서 희망을 찾는 과정의 이야기이다. ‘죽음’이라고 해서 불행한 결말이 아니라 ‘삶의 희노애락을 받아들일 줄 알며 함께한 순간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 결말인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배불러서 자는 것’이라는 어린 관객의 말이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11마리 고양이>는 공연 내내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쉽고 유쾌한 작품이다. 전문 스탭이 만들어낸 탄탄한 이야기와 음악, 아마추어지만 누구보다 진정성을 갖춘 시민 배우들은 작품에서 모자람 없이 서로를 지탱한다. 그 동안의 긴 연습을 반영하듯 대사는 어색함 없이 이어졌고 실수하면 당황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 인정하고 바로잡아 관객에게 신뢰감을 주었다. 무엇보다 마이크 앞에서나 뒤에서나 무대를 즐기며 끝까지 함께 연기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부족한 부분도 있었다. 합창은 좋았지만 각자 파트에서 개인의 가창력은 부족한 면이 많았고 대사 실수나 어색한 동작도 있었다. 하지만 배우들의 다듬어지지 않은 연기는 열정으로 커버되고 탄탄한 음악의 완성도가 합쳐져 관객에게 색다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 것도 분명하다. 이것이 음악극축제의 제작공연 ‘시민합창뮤지컬’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평범한 주부도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어린 학생도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시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시민합창뮤지컬’은 그만큼의 책임감을 가지고 도전해야 한다고 지휘자 홍준철과 반주자 박옥주는 강조한다. “그 어떤 뛰어난 재능보다 중요한 것이 기본적인 성실성”이라며 “긴 연습을 견디고 역할의 크고 작음보다 작품의 흐름을 이해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홍승찬 예술감독은 노선락 작곡가, 홍준철 지휘자, 박옥주 반주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프로젝트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내년을 기약했다.
제12회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는 17일(금)~19일(일) 폐막까지 국내초청작 <뮤지컬 오디션>과 폐막작인 호주의 <인코디드>가 있으며 특별초청공연으로 19일 장사익 소리판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공연이 남아 있다. 당일 공연 직후 7시 30분부터는 의정부예술의전당 야외 특설무대에서 폐막식이 진행된다.
폐막식에서는 <11마리 고양이>의 갈라 콘서트와 음악극축제의 홍보대사인 팝핀현준과 박애리 부부가 함께하는 힙합과 국악의 흥겨운 무대 등 다양한 공연이 무료로 펼쳐진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www.umtf.or.kr 문의 031.828.5894~5번으로 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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